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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oooo을 가지고 있다.

어제 세명의 친구들이 집에 왔다 갔다. 오랜만에 보고싶다는 연락이 왔었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 문체가 딱딱하다. 나는 성인 ADHD를 가지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S는 몇마디 안부를 나누다가 눈물이 터졌다. 자신이 성인 ADHD인 것 같은데 친구가 내 이야기를 해주며 은도 성인 ADHD인데 잘 받아들이며 사는 것 같다고 해서 나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러지' 하고 땅굴을 파면서 어둠으로 빠져들던 몇년 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친구에게 공감하며 이런 저런 나의 경험을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저녁에 이불 속에 누워 내가 한 말들을 복기하면서, 아 이런말은 하지 말껄,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도 있었는데, 이불킥을 유발하는 아쉬움과 반성들이 자꾸 떠올라 잠을 설쳤다. 그리하여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글로도 정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니 부담없이 주절주절 써보련다.

나의 마음은 늘 흔들거리고 있다. 그때그때 다르다. 나는 공간이 필요하다. 다음 순간에 무엇이 올지 지금의 나는 모른다.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는 틈이 필요하다. 순간적이지만 깊은 내적인 충동을 따를 수 있는 자유가 나에겐 중요하다.

한가지를 꾸준하게 해나가는 것이 어렵다. 문어발 호기심, 새롭게 마주치는 흥미로운 것들이 너무나 많다. 한가지를 선택하는 것은 다른 것들을 버려야하는 것인데 그것이 나는 어렵다. 주의가 순간순간 옮겨간다. 생각이 팍팍 튄다. 글을 쓸 때도 그렇다. (이 글을 읽으면서도 느꼈겠지만) 그렇구나. 버리고 싶지 않다. 글을 쓰다보면 문맥에 맞지 않는 문장은 버려야하는데, 나는 그것이 진실하지 않다고 느낀다. 편집하는 것은 진실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면 나의 머리속은 그야말로 중구난방이니까. 그걸 글을 쓴다고 하나의 맥락으로 정리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만 같다. 진짜 나는 이런 생각도 하고 저런 생각도 하는데.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데. 지금은 이렇지만 다음 순간에는 변할 수도 있는데.(나는 실제로 그렇다) 하나의 관점으로, 글로 정리하고 나면 그걸로 나의 소개가 끝날 것만 같다. 아닌데, 나는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생각들로 가득한데 그걸 다 쓰기엔 너무나 벅차고 귀찮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아예 안쓰는 것이다. 아니면 이렇게 단편들을 주절주절 하거나. 나의 글쓰기는 이렇게 주절주절하면서 나와 만나는 그 시간 자체에 의미가 있다. 다른 의미에서 정리가 된다. 들여다보고 마주하고 인정하고 흘려보낸다. 한가지를 꾸준하게 해나가는 것은 잘 못하지만 가슴이 따뜻해지는 순간들을 따라서 가다보면 듬성듬성 꾸준한 순간들이 쌓인다. 나는 어떤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프로젝트형이 아니라 삶의 흐름속에서 경험과 내공이 쌓여 즉흥적인 어떤 순간에 인연에 따라 내음이 흘러나오는 사람이다. 지도가 아닌 나침판을 가진 여행자다.

나는 어렸을 적 부터 주변에서 알아주는 덜렁이였다. 학교 준비물 안챙겨가는건 예사고, 지각은 애교, 비오는 날에는 우산 잃어버리고, 지하철에 상습적으로 가방두고 내리고, 아무튼 손에 들고 있는건 조만간 잃어버린다고 보면 되었다. 수업시간에는 졸거나, 낙서하거나, 멍때리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조용히 성실하게 딴짓을 했다. 흐리멍텅. 학교에서는 늘 머리속이 흐리멍텅했다. 근데 또 벼락치기에 강해서 성적은 잘 나왔다. (이런걸 보고 조용한 ADHD라고 한다더라. 과잉행동이 많은 남자아이들은 발견이 잘 되는데 여자아이들은 조용한 ADHD가 많아서 발견이 잘 안된다고 한다.)

나는 ADHD를 가진 운이 좋은 아이였다. 아, 어렸을 땐 내가 ADHD라는 걸 몰랐다. 그저 나의 성격격인 특성으로, 개성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이런면이 꽤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내가 성인 ADHD라는 것을 알고나서 정보를 찾아보니 생각보다 굉장히 힘든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운이 좋았다. 내가 나의 ADHD적인 성향을 부정적이기 보다는 긍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주변에서 내가 가진 부족한 모습들을 웃음으로 받아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덕분이었다.

ADHD는 유전이라고 한다. 나는 우리 아빠를 좋아한다. 아빠는 나랑 성향이 비슷하다. 아니 나보다 더 한 부분들도 있다. 아빠는 엄마랑 결혼한지 얼마 안됐을 때 버스를 탔다가 땀이 찬다고 결혼반지를 빼서 창가에 잠깐 빼놨다가 까먹고 그냥 내려서 잃어버린 사람이다. 늘 도시락 가방을 지하철에 두고 내려서 엄마에게 야단맞는 것이 일상이었다. 동시에 아빠는 인간미 만점이었다. 자신의 구멍이 많은 만큼 타인에게 관대했다. 잘 씻지 않아서 머리에 비듬이 많았지만 그래서 싫기보다는 그게 그냥 웃겼다. 기안84와 비슷하다고 할까. 정리정돈이 잘 안되는 집이 지긋지긋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늑하고 편안했다. 나는 아빠를 닮았고, 친구들은 내가 아빠에게서 느낀 인간미와 편안함를 나에게서 느꼈다.

오늘은 여기까지. 수정될 수 있고 지워질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