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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없음

아하하하 헛웃음이 나온다. 내일 동쪽에서 일정이 있어서 저녁에 서귀포 시내에서 운동을 하고, 미리 성산으로 넘어왔다.(동쪽에 오면 신세지는 집이 있다) 성산집에 들어가려는 순간, 쎄하다. 가방에 열쇄가 없다. 배터리는 7%남아있고. 시간은 저녁 10시가 넘었다. 문수가 있는 우리집으로 다시 가려면 버스로 2시간 걸리는데, 이미 버스는 다 끊겼다. 망했다. 카카오택시 어플을 깔다가 핸드폰이 꺼졌다. 충전할 수 있는 곳을 찾아헤메다 열려있는 공중화장실을 찾았다. 시골이라고 택시 안잡히면 어떻하지. 간신히 충전하면서 복잡한 인증절차를 걸쳐 택시를 불렀다. 제주참숯가마까지 12000원. 근처에 있던 택시가 바로 잡혔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열려있는 화장실과 늦은 시간까지 일하시는 택시기사님, 그리고 24시 운영하는 참숯가마의 존재에 무한 감사했다. 사실 몇달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그땐 차가 있어서 운전해서 참숯가마에 왔었다. 운동해서 땀범벅인 몸을 씻고 미지근한 편백방에서 오늘의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예전에 여행할 때 다음 여행지의 숙소예약을 깜빡해서 스톡홀름 기차역에서 노숙한 적이 있는데 그때가 떠올랐다. 기차역에서 나처럼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새벽 1시쯤 되니까 경찰이 기차역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을 내쫒았다. 바로 옆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먹으며 버티다 기차역이 다시 문을 열때쯤 새벽에 나갔는데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술에 취해서 다가왔다. 기차역 열리려면 아직 멀었다며 스톡홀름 구경을 시켜주고 싶다고. 못믿겠으면 자기 지갑을 가지고 있으라고. 내가 알 유 드렁큰? 이라고 했는데도 웃으면서 지갑을 자꾸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래 뭐 나쁜 사람은 아닌거 같고 술취한 재밋는 또라이구나(또라이 좋아함). 하고 같이 새벽 도시 구경을 했다. 공원에도 데려가고 사진도 찍어주고 농담도 해가며 정말 여행자에게 자기가 사는 도시를 소개해주고 싶어하는 술에 취한 좋은 사람이었다. 아침이 되가자 자기는 이제 가야된다며 나보고 지하철타고 다시 기차역으로 가라고 했다. 지하철까지 친절하게 데려다주고는 개찰구에서 현란한 발동작으로 무임승차를 시켜줬다. 그 드렁큰맨은 그 새벽을 기억하고 있을까. 덕분에 스톡홀름에 대한 인상이 즐겁고 재밌게 남아있는데. 고마워요 드렁큰맨. 오늘도 노숙할 뻔 했지만 이럴 때마다 주변에 공기처럼 존재하던 도움의 손길들을 느끼고 감사할 수 있으니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나처럼 건망증이 심하고 어리버리하다 궁지에 몰리는 상황을 수없이 마주하다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긍적적인 면과 감사한 부분들을 찾아내는 능력이 계발된다. 하도 잃어버리니 무소유도 후천적으로 계발됐다. 이제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