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이토록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리고 흩어져 떠다니는 단어들을 누른다. 어제는 제주시 시청 앞 탄핵시위에 갔었다. 몇일 동안 일상의 대부분을 뉴스를 보느데 시간을 썼다. 계엄령이 선언되던 날, 호기심으로 소량 돈을 넣어놨던 비트코인을 체크하고 있는데 갑자기 가격이 우수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말로만 듣던 비트코인의 변동성이구나 하는데 문수가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언했대 라고 했다. 계엄령? 전쟁난거야? 얼른 유투브를 켜고 대통령의 영상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종북세력을 처단한다고? 이게 뭐지? 내일 학교 수업은 어떻게 되는거지? 아니 어떻게 처단한다 라는 언어를 쓸 수 있지? 아 비트코인도 우수수 떨어졌는데 내일 주식도 엄청 떨어지겠구나. 내일 독서모임은 어떡하지?.... 그날 계엄령이 해제되는 걸 보고서야 잘 수 있었다.
올해 5월즈음에 친구가 카카오페이가 이자율이 높다고 알려줘서 어플을 받았다. 사용해보니 간편결제가 편리해서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자주 쓰다보니 이런저런 기능을 더 살펴보다가 주식탭에 들어가게 되었고 정말 단순하게 카카오페이 쓰니까 카카오페이 주식을 1주 사봤다. 태어나 처음 사본 주식이었다. 당시 35,000원이었던 카카오페이는 점점 떨어지더니 23,000원과 25,000원을 왔다갔다 오래도록 길게 횡보했다. 그래도 팔기전엔 손해가 아니지. 워낙 소액이고 언젠가는 오르것지 뭐. 하고 떨어질때마다 저축하듯 모았었는데 계엄령이 떨어졌으니 이제는 아주 더 떨어지겠구나. 근데 웬걸. 다음날 한국 주식은 다 떨어졌는데 카카오주식들만 20% 이상 올랐다. 탄핵테마주란다. 윤석렬 정권이 싫어하는 좌파기업이라나. 하하하.. 웃프다 웃퍼. 그때 팔았으면 10만원 수익이었는데, 더 오를 것 같아서 팔지않았다. 당연히 탄핵이 될 줄 알았다. 지금 이 상황은 누가봐도 말이 안되는 상황이니까. 근데 '당연히'와 '누가봐도' 라는 것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단어구나. 지금과 비슷한 상황은 역사 속에서 무수히 되풀이되어 존재했구나.
오늘 새벽에 일어나 한강 작가의 노벨상 문학강연을 보았다. 조곤조곤 이어지는 힘없이 담담하고 깊은 목소리.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을 품고 고통과 작별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멀리까지 가보는 마음.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인 동시에 아름다운가."
질문을 살아내는 삶을 살겠다던 시절의 나는 어느새 주식과 비트코인을 걱정하는 어른이 되었구나. 사회혼란도 혼란인데 돈을 잃을까봐 걱정하는 나의 알량한 욕심과 손해보기 싫은 쪼잔함과 비겁함, 연약하고 모순되고 흔들리는 마음들을 본다. 동시에 내가 속한 사회 경제 시스템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느낀다. 당연한 것은 없어. 그렇게 흔들리고 용기내어 자신의 질문과 대답을 쌓아온 이미 죽은 사람들의 선물이다. 시위에 참여하면서 질서있고 평화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이렇게 새벽에 스탠드를 켜고 글을 쓰고 있는 이 일상도. 이 시대의 나는 계엄포고령에 쓰여진 문체가 너무나 구식이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7-80년대 그때의 사람들에겐 그것이 일상이었겠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안에서도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는거겠지.
세상은 정말 이상하고 기괴하고 요지경이야. 그건 예전에도 그러했고 이후로도 그럴거야.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은 버렸어. 그저 그런 것들에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아닌 것들을 놓아버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발견하면서. 그렇게 쌓이는 일상이 나와 주변, 그리고 나중에 올 생명들에게 선물이 되기를 바라면서. 내가 누리고 있는 일상에 감사하면서. 그렇게 살아가야지. (나에게 하는 말)
한강의 책은 시집 말고는 아직 읽지 않았었는데 읽어봐야겠다.
p.s) 카카오페이는 탄핵될 때까지 안팔거다.